조선의 로맨티시트 몽룡, 선비 성이성 - 계서정에 머물다

697 2017.08.1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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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로맨티시트 몽룡, 

선비 성이성  - 계서정에 머물다

 

이 경 숙  시인/문화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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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의 남자 몽룡, 

그의 여자 춘향

 

계서정으로 성춘향의 남자, 이몽룡을 만나러 간다. 계서정은 고전소설 『춘향전』의 실제 모델인 성이성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하던 곳으로, 영주시 신암 3리에 위치해 있다. 이몽룡과 성춘향의 사랑이야기는 서양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비길 만하다. 그러나 해피앤딩(happy ending)과 새드앤딩(sad ending)이라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춘향은 고귀한 사랑의 표준이며, 시대가 더할수록 수없이 생성되어 나오는 아름다운 사랑의 발원지이다. 예부터 춘향은 사랑의 테마가 있는 곳이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운명적인 사랑의 아픔과 슬픔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또 행복한 결말로 안도감을 주기도 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춘향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우리들 가슴 속 깊이 남아있는 사랑의 정의이며 사랑의 표본이 되었다. 그런 춘향의 남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춘향의 말에 귀 기울여본다.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 몽룡의 마음으로 들어보려 한다.

 

향단(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 듯이,

향단아.

 

이 다수굿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베갯모에 놓이듯한 풀꽃더미로부터,

자잘한 나비 새끼, 꾀고리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려 올려 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려 올려 다오.

향단아.

    - 서정주,「추천사鞦韆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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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은 그네를 탄다. 그리고 향단에게 말한다. “그네를 높이 밀어라.” 그네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구이지만 그 자리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네를 미는 행위는 반복되고, 춘향은 ‘하늘’로 가고자 한다. 춘향은 그곳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표명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네는 정점에서 하늘 끝까지 가지만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온다. 향단이 그네를 밀어준다 해도 결국 춘향은 이상향에 가 닿을 수 없다. 춘향의 이상향은 확실히 정해져 있고 그에 대한 동경은 다다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네를 타는 춘향은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불안으로 ‘울렁’임을 느끼게 된다. 그런 춘향에게 몽룡이 다가온다. 몽룡의 눈에 춘향이 보인 것이다. 그렇게 몽룡은 춘향의 이상향, 희망이 된다.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사랑이 복잡한 방정식을 푸는 일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쯤은 다 알 것이다. 사랑은 노력한 만큼 결과가 안 나오는 경우가 많다. 사랑을 혼자서 한다면 얼마나 안전하고 편리할까. 쉽게 변하지 않고, 오래 유지할 수도 있고, 상상만 하면 그 어떤 것도 현실로 가공할 수 있고, 상처받을 걱정 따위 없을 테니까.  

 

흐느낌으로 피던 살구꽃 등속이 또한 흐느끼며 져버린 것을 어쩌리오.

세상은 더욱 너른 채 소리 내어 울고 있는 녹음을,

언제면 소복(蘇復)본단 말이요.

피리 구멍 같은, 옥에 내린 달빛 서린 하늘까지가 이내몸에 파고들어

기쁜 명(命)줄로 앓아쌓는 저것을 어쩌리오.

이런 때, 천지는 입덧이 나 후덥지근하고,

태장(苔杖)끝에 피멍진 천첩(賤妾) 춘향의 전신만신

캄캄한 살 위에도 별 생기는 아픔을

만일에도 이 한밤 당신이 서서 계신다면은

어느 별만 우러러 아프게 반짝인다 하리오.

    - 박재삼, 「녹음綠陰의 밤에」

 

춘향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사랑의 욕구를 가진 여인이다. 그녀의 마음속에 피는 사랑의 '꽃나무'는 춘향 자신이 의도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생명의 발현으로서 움직여 나온다. 자연의 힘이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아름다운 사랑의 꽃을 피워 올린다. 자연과 인간을 동질적(同質的)인 존재로 본 것이다. 꽃나무에 꽃이 피는 것이 자연의 아름다운 이치인 것처럼, 춘향의 마음에 피어나는 사랑도 자연스러운 생명의 표현이다.

 

춘향의 목소리를 통해 드러나는 구원자는 ‘당신’이다. 춘향은 그 어딘가에 있을 당신을 굳게 믿는다. 그러므로 당신에 대한 믿음으로 아픔과 고통도 이겨내며 아프게 반짝이며 지켜보겠다고 한다. 서정주의 '추천사'는 춘향을 지상적 세계의 고뇌 때문에 괴로워하는 여인으로 그렸다면, 박재삼의 ‘녹음의 밤에’ 춘향은 사랑 때문에 느끼는 기쁨과 슬픔을 모두 순수한 생명의 흐름으로 말한다.

 

몽룡은 춘향을 말을 들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사랑은 언제나 종말에 대한 예감으로 인해 더 절실해진다. 사랑이 변할까봐, 사랑이 사라질까봐, 우리는 언제나 “진짜 나 사랑해?” “사랑한다고 말해봐, 다시”를 외친다. 사랑의 담론은 늘 종말을 고하는 세계와 함께 오는 것이다. 애착의 대상, 혹은 열정의 대상을 잃어버린 고통,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의미가 클수록 고통도 커지는 것일 테니까. 그러므로 사랑의 담론은 지극히 외로운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데서 비롯된다. 몽룡과 신분 차이가 있는 춘향에게 사랑은 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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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넓은 세상

우주 한가운데에

수많은 무리가운데서

‘그대’라는 이름의 마음하나 새겨 두고

이토록 가슴 아파하는 것은?

하늘의 별, 아득하기 때문인가

지상의 바람, 흔들림 때문인가

아 신으로도 잠재울 수 없는

내 슬픈 영혼의 집이여!

     - 이영춘, 「영혼의 집」

 

몽룡에게 춘향은 영혼의 집이었을까! 춘향에게 몽룡은 영혼의 집이었을까! 나에게도 과연사랑하는 사람이 영혼의 집일까!

 

 

스캔들 메이커 몽룡,  

너무나 인간적인 성이성

 

성이성은 말년에 영주시 이산면 신암 3리에 있는 계서초당에서 한동안 생활했다고 한다. 계서정의 현판은 당대의 문사 채제공의 기문(記文)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초가로 지어졌던 것을 후손들이 기와를 올렸다. 성이성은 초당에서 어떤 모습을 하며 글을 읽고 여가를 즐겼을까. 고요한 초당, 성이성 앞에서 바르게 앉아 낭낭하게 글을 읽는 어린 선비들이 보이는 듯도 하다.  

 

계서초당, 그 그늘 아래서 이 지역의, 이 나라의 선비가 길러졌다. 그들의 가치가 선비정신으로 발현되어 오늘에 이르렀음이 틀림없다.

 

금준미주(金樽美酒)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肴) 만성고(萬姓膏)라.

촉루락시(燭淚落時) 민루락(民淚落)이요

가성고처(歌聲高處) 원성고(怨聲高)라.

 

 성이성은 강직한 간관(諫官)이자 청백리(淸白吏)였으며, 춘향전에 나온 ‘금준미주 천인혈(金樽美酒 千人血)'을 실제로 지었다. 『교와문고』외에 그의 스승 조경남이 쓴 『난중잡록』에도 성이성의 작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호서 암행어사와 호남 암행어사로 활동, 감찰하며 부패 수령들을 봉고 파직시켰다. 사후인 1695년(숙종 21) 청렴함을 인정받아 조정으로부터 청백리로 선출되었으며 저서로는 『계서유고』가 있다.

 

성이성은 1607년(선조 40) 남원부사로 부임한 아버지 성안의를 따라 갔다가 그곳에서 기생 춘향을 만나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 성안의가 참의로 발령되면서 춘향과 이별한다. 세월이 한 참 흐른 후, 성이성이 호남 암행어사로 감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스승을 만나 하룻밤을 지내며 춘향과의 로맨스를 들려준 것이 《춘향전》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시중에는 성이성과 춘향을 소재로 한 춘향전이 희극과 인형극, 만담 등으로 확산되었는데, 양반가 자제의 스캔들이라 하여 조정에서 금지하게 되자 성몽룡을 이몽룡으로 바꾸고, 성씨(姓氏)가 없던 기생인 춘향에게 성씨 성을 붙여서 시연하게 되었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지 이히 내사랑이로다

아매도 내사랑아 니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둥글둥글 수박 웃봉지 떼뜨리고 강릉의 백청을 다르르르 부어 씨는 발라 버리고 붉은 점 움뿍 떠 빈간 진수로 먹으려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앵도를 주랴 포도를 주랴 귤병사탕의 회화당을 주랴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시금털털 개살구 작은 이도령 서는데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아장 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방    긋 웃어라 아마도 내 사랑아

 

춘향전의 <사랑가> 가사이다. 이몽룡이 춘향의 방에서 부르는 <사랑가>는 참으로 농밀한 성적 구애의 가사들이다. 무릇 선비란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오직 나라를 위하여 도모하며, 일을 당해서는 과감히 실행하고 환난을 헤아리지 않는다 하였다. 선비의 풍모를 지닌 성이성도 꽃 같은 춘향에게 온전히 몸과 마음을 빼앗기는 남자였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성이성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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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비는 역사의 방향을 제시하고 우리사회의 구심점을 이루었던 지성이요, 인격이다. 선비정신은 역사를 통해 사회의 올바른 가치기준을 밝히는 의리정신이요, 정의로운 이상을 수호하기 위해 불의에 항거하는 비판정신이며 저항정신이다. 이러한 선비는 시대마다 불의한 세속적 권력의 혹독한 탄압을 받았으며, 역사적 위기에 맞서 저항하며 고난과 시련을 감당하는 불굴의 용기를 발휘하였다.

 

몽룡과 춘향의 로맨스가 가능했던 것은 이런 맥락이 아닐까. 자신의 가치를 지키며 정의로움을 실천하여 사후에 청백리로 인정받을 만큼 강직했던 몽룡과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저항하며 불의와 타협 없이 소신껏 행동하며 자신의 사랑을 지켜낸 춘향, 두 사람의 몸속에 깃든 정신이 그들을 통하게 하지 않았을까. 이것이 바로 선비정신이 아닐까 한다. 그들은 서로를 한 눈에 알아본 것이다. 이런 정신을 가진 그들이기에 시쳇말로 말이 좀 통하는, 대화가 되는 남녀였던 것이다. 그러니 사랑할 수밖에…….

 

 성이성을 로맨티스트로 부각시키는 것에 대해 일부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가장 따뜻한, 가장 바람직한 인간관계이다. 또한 사랑은 그러한 관계를 맺고 지켜가고자 하는 마음이자, 마음의 움직임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가슴을 가진 사람이 서로 유대 또는 사귐을 갖는 것이고, 그것들을 이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곧 사랑이다. 우리는 그것을 ‘정을 주고받는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애틋하다고 표현된 그리움, 간절함, 마음의 움직임을 포함하는 소망, 열정, 욕망 등이 사랑이다. 그런 면에서 ‘마음을 준다’ 또는 ‘마음을 바친다’라는 말로, 또는 ‘정을 준다’ 등의 말로 사랑이라는 행위를 표현한다. 사랑은 복합적인 인간 심성인 만큼, 거기에는 미더움, 미쁨이 따르게 마련이고, 도덕심 또는 윤리의식도 수반되게 마련이다. 사랑은 마음씨의 고움, 이쁨, 착함이며, 훈기까지도 바탕에 있다. 그런가 하면 종교에 버금할 만큼 믿음이 강조된 심성의 영역이 곧 사랑이기도 하다.

 

신분이 다름에도 춘향을 귀히 여기는 마음, 따뜻함을 가진 남자로서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관계 맺음,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끝까지 책임지고자 하는 윤리의식, 이런 것이 성이성의 기저이므로 선비의 풍모를 지닌, 진정 선비다운 선비정신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한다. 조선의 로맨티스트 몽룡, 선비 성이성. 그는 참으로 한결같은 사람이다. 참 선비이다.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

우리 들이서 그늘 밑에 서 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예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예요.

    - 서정주, 「춘향유문春香遺文」

인간의 본질에는 자기 자신을 보존하려는 욕망이 있다. 우리는 이 욕망 때문에 더 완전해지려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더 완전한 상태로의 이행인 기쁨을 바라고, 덜 완전한 상태로의 이행인 슬픔은 피하려한다.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대상은 사랑하고, 슬픔을 주는 대상은 미워하게 된다. 나에게 기쁨을 주는 대상은 나를 더 완전하게 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고, 슬픔을 주는 대상은 나를 덜 완전하게 하기 때문에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 됨으로 서로의 완전함을 꿈꾸었던 춘향과 몽룡의 모습이 선연하다, 그들의 말이 귓가에 쟁쟁히 들리는 듯하다. 시대를 초월한 사랑의 화신으로서의 의미를 더해본다. 그 속에 깃든 정신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역사인 것이이다.

 

로맨티스트와 선비, 이 낯선 부조화가 성이성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조화롭게 한다. 계서정을 뒤로 하며 혼잣말을 되뇌인다. 그러니 사랑을 위대하다할 수밖에, 사랑을 숭고하다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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