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를 앞서 실천했던 큰 어른의 집 “봉화 남호구택”

396 2017.08.1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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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의를 앞서 실천했던 

          큰 어른의 집 “봉화 남호구택”

 

이 경 숙  시인/문화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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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본적지를 찾아

 

우리의 출발점은 기억이다. 우리는 기억하는데 서툴다. 우리의 마음은 난처하게도 사실적이든 감각적이든 중요한 것을 잘 잊어버린다. 봉화 바래미마을로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떠나보자.

 

나의 본적은 늦가을 햇볕 쪼이는 마른 잎이다 밟으면 깨어지는 소리가 난다

나의 본적은 거대한 계곡이다

나무 잎새다

나의 본적은 푸른 눈을 가진 한 여인의 영원히 맑은 거울이다

나의 본적은 차원을 넘어 다니지 못하는 독수리다

나의 본적은 

몇 사람밖에 안 되는 나의 고장

나의 본적은 인류의 짚신이고 맨발이다

 

- 김종삼, 「나의 본적」, 부분

 

누구에게나 본적이 있다. 그것이 물리적 공간이든, 정신적 내면의 공간이든, 본적은 존재한다. 밟으면 깨지는 소리가 나는 본적지라니, 인류의 짚신이고 맨발인 본적지라니, 그건 내가 짚신이고 맨발 같은 존재라는 말일 것이다. 그 사실은 얼마나 겸손하고 거대한가. 

 

나의 주소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나의 본적, 세속적이고 속된 주소지가 아닌 내 정신과 숨결과 꿈을 키워준 주소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주소지는 영원한 것이 되지 못한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사는 동네를 묻는 것이 상례라 여기고, 대답을 듣고 나면 그 동네에 대한 생각을 말하기도 한다.

 

바래미마을, 그 중에서도 남호구택에는 무엇이 있기에 후손들이 집을 대대로 지키며 생활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그 물음은 나의 본래 자리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일상의 낯선 곳에 홀로 서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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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그 고고한 자존심

 

남호구택을 방문한 날은 유난히 하늘빛이 푸르고 볕이 좋았다. 늘 대의를 앞서 실천했던 큰 어른이 계셨던 집을 방문하기에 더 없이 좋은 날이다. 고택(古宅)이 아닌 구택(舊宅)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고택은 오래된 집을 뜻하고, 구택은 대대로 그 집을 비우지 않고 사람이 기거한 집을 뜻한다. 남호구택은 건립 이후 계속하여 후손들이 거주하여 구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876년에 김난영(金蘭永, 농산(聾山))이 건립하고, 그의 아들 김뢰식(金賚植, 1877~1935, 남호(南湖))이 살던 곳이다. 대개의 경우 건립자의 호를 집의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특이하게도 이곳은 아들의 호가 집의 택호(宅號)가 되었다. 그 유래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다. 

 

경상도 봉화에 명망 높은 부호였던 김뢰식은 자신의 전 재산을 저당 잡힌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자금으로 내놓은 공으로 1977년 건국훈장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당당한 모습으로 두 눈 가득 들어온다. 담장 안에 들어선 건물의 면면 역시 새로운 기분이 들게 한다.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사람이 되어라.

거대하고 고귀한 구조물을 짓고 싶은가?

구조물을 높게 지을수록 토대가 깊어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중에서

 

위대한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먼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를 의미한다. 보통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즉, 사회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단어이다. 

 

존경할 만한 부자를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자기 자신보다 대의를 먼저 생각했던 부자는 분명 존재했다. 그 사실은 남호구택에 머무르는 동안 확인할 수 있다. 노블레스 오블레주(Noblesse oblige), 그 고고한 자존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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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을대문을 열고 지나간 시간의 초대에 답하다

 

응방산 줄기의 낮은 야산을 배경으로 마을 중간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집은, 솟을대문이 있는 대문간 채를 들어서면 안채와 사랑채가 접하여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정면 사랑채가 7칸, 안채 폭이 6칸, 전체 26칸의 규모이다. ㅁ자형 집은 사랑채의 가운데에 중문을 두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집은 옆면에 동향의 중문이 있다. 

 

나무의 고장인 봉화에 위치한 부잣집답게 부재의 크기가 호방하고 양질인 고급목재를 사용하여 100년이 넘은 고택인데도 불구하고 변형되거나 보수한 흔적이 많지 않다.남호구택의 특징은 사랑방에 있는데 큰사랑, 작은사랑 등 2칸 규모의 방 3개를 사랑채로 사용하고 있으며 사랑채 정면의 큰사랑과 작은사랑 사이에는 마당 쪽으로 돌출된 도장방이 있어 특이한 구조이다. 이곳에는 사랑채에서 사용되는 여러 기물 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되었다 한다. 전체적인 집의 구성이 요철과 음양의 조화를 염두에 둔 구성과 배치로 균제미가 있어서, 단순하고 정제됐을 뿐 아니라 아기자기하고 실용적인 멋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봉화지역 ㅁ자 주택의 특징은 완전히 닫힌 폐쇄적인 구조와 툇간의 적극적인 사용인데, 남호구택의 경우,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용도와 수납공간을 유연하게 만들어낸 실용적인 의도가 엿보인다. 

남호 김뢰식이 자신의 할아버지 노원 김철수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 별채 영규헌은 집과 붙어 있지 않고 따로 떨어져서 건축되었는데, 개인 서실 겸 마을 도서관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사람은 집을 만들고 집은 사람을 만들어간다

 

봉화군 봉화읍 바래미길에 위치한 남호구택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85호로 지정되어 있다. 노원 김철수의 5대손인 김호철 선생과 그의 부인 김필영 여사가 집을 지키며 손님을 맞는다. 두 분의 온화한 모습이 집에 기품을 더한다. 명품고택으로 지정되어 한옥스테이를 하며 자랑스러운 선대(先代)의 정신을 알리고 있다.

 

사랑채 중문을 지나 안채 마당에 들어서자 아담하게 꾸며진 꽃밭과 장독대가 보인다. 반질반질 항아리에 윤이 난다. 오랜 세월, 익은 장맛처럼 집 안 곳곳에 머물다 간 사람들의 철학이 배여 있는 듯하다.

 

이제 다시 그처럼 깨끗한 기도 만날 수 없으리

장독대 위 정한수 담긴 흰 대접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둠은 도둑걸음으로 졸졸졸 고여 오다가

흰빛에 닿으면 화들짝 놀라 내빼고는 하였다

어머니는 두 볼에 홍조 띄우고

두 손 가지런히 모아

천지신명께 일구월심 가족의 소원 대신 빌었다

 

감음한 뒷산 나무들 자지러지게 잔가지를 흔들고

별꽃 서너 송이 고개 끄덕이며 더욱 환하게

웃어 주었다 그런 새벽이면 어김없이 얼어붙은

비탈에 거푸 엎어져 무릎 까진 밤새 울음이 있었다

풀잎들은 잠에서 깨어 부스럭대고

바지런한 개울물 들을 깨우러 가고 있었다

촘촘하게 짜여진 어둠의 천 오래 입은 낡은 옷 되어

툭툭 실밥이 터질 때 야행에 지친 파리한 달빛

맨발로 걸어 들어와 벌컥벌컥 마셨다

광석들 가로지르는 서울행 기차 목 쉰 기적이

달아오른 몸 담궈 오기도 하였고 밤나무의,

그 중 실한 가지가 손 뻗어오기도 했으나

정한수는 줄지 않았다

장독대. 내 생의 뒤뜰에 놓여 있는,

생활이 타서 갈증으로 목이 마를 때

흰빛 내밀어 권하시는,

내 사는 동안 내내 위안이고 지혜이신 어른이시여,

 

 - 이재무, 「장독대」

그 옛날 어머니들은 장독대에 정한수 한 사발을 올리고 기도하셨다. 흰 대접을 정갈하게 닦고 오롯이 자식들을 향한 순정한 마음을 담아 정한수를 담으셨다. 그럴 때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다. 그러나 철없던 자식들은 왜 그토록 어머니를 떠나고 싶었을까! 그러나 순간 순간 삶에 지쳐 집으로 돌아올 때면 어머니의 정한수는 그대로인 채 넉넉히 품으로 안아주신다. 

 

우애가 남달라 주위의 부러움을 산다는 남호구택에서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머물다간 이들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어머니의 손길로 집은 만들어지고, 그 집은 앞서 대의를 생각했던 큰 사람을 만들었다. 하여, 그 사람은 그 집의 품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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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충만해지는 일

 

우리는 겉으로는 번쩍거리고 잘 사는 것 같아도 정신적으로 초라하고 궁핍하다. 크고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적은 것과 작은 것에서 오는 아름다움과 살뜰함을 잃어버렸다.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가?

아름다움과 살뜰함과 고마움에 있다.

 

남보다 적게 갖고 있으면서도 그 조촐함 속에서 아무 부족함 없이 소박한 기쁨을 잃지 않는 삶이야말로 청빈의 화신이다. 그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생의 소박한 기쁨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을 살 줄 아는 것이다.

 

- 법정, 류시화 엮음,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부분

 

김호철 선생의 배웅울 받으며 법정 스님의 말씀을 떠올려본다. 누군가 다른 꿈을 꾸는 동안에 나는 나만의 꿈을 꾼다. 진정 행복한 사람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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